포스코 기업 블로그
기자단/브랜드 앰배서더 2018.01.25 10:23

[브랜드 앰배서더] 자유의 바람이 부는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만나다

 

 

도시 전체에 자유의 물결이 일렁이고 클래식한 감성과 화사한 낭만이 공존하는 샌프란시스코. 미국에서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는 백인과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인 등 세계 각국의 인종이 모인 만큼 세계의 축소판이라 불립니다.


이번 5박 7일간의 일정 중 저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만든 개성 있는 독특한 문화들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이번 편에서는 문화적 소수자의 자유로움과 이 자유가 하나둘 모여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삶의 방식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포대앰 3기의 샌프란시스코 탐방기, 그 마지막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히피 문화의 발상지, 샌프란시스코 자세히 보기

 

히피(Hippie)는 1960년 샌프란시스코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탈사회적 행동을 일컫는 표현으로, 기성의 사회 통념이나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물질문명에 항거하는 문화입니다. 반전 운동과 인권 운동, 성(性) 해방, 반자본주의 운동 등 기존의 모든 주류 문화에 반대하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 것이 히피 문화의 본질인데요. 이러한 히피 문화를 있게 한 것은 1950년대를 주름 잡은 ‘비트 제너레이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지나친 산업화로 사회는 점점 획일화되었고 물질만능주의 역시 팽배해져 갔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하며 가난과 자유, 개성을 찬양하고 산업화 이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주장하는 젊은 세대가 바로 ‘비트 제너레이션’입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술과 마약을 비롯해 록(Rock), 재즈(Jazz), 문학 등의 예술로 표출하기도 했는데요.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불안정하고도 불꽃 같은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소설 <On The Road(길 위에서)>는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작으로 남아있습니다.

 

 

비트 제너레이션을 에너지로 삼아 1966년,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시버리 거리를 찾은 약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 문화의 기원이 되었는데요. 그들은 사랑과 평화를 목적으로 최소한의 의식주로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함께 지내며 예술을 논했습니다. 이들의 가치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며 샌프란시스코는 자유로운 문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성장했는데요. 현재도 샌프란시스코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육성하며 창의와 자유의 도시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히피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히피 문화는 다소 파격적이고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행복에 최대 관심을 가지고 세속적인 물질문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그 의미에 점차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포대앰이 직접 두발로 뛰며 체험한 청춘과 자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거리의 미술관 '미션 스트리트'

 

첫 번째로 소개하는 곳은 미국의 스트릿 컬쳐를 대표하는 ‘그라피티’를 볼 수 있는 미션 스트리트(Mission st.)입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거리인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데요.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더라도, 온 골목 건물들의 외벽을 수놓은 이색적인 그라피티에 시선을 뺏겨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의 자주성을 드러내기 위한 벽화 운동으로 시작된 미션 스트리트의 그라피티는 거리에 놓인 미술관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민자의 애환이 녹아있는 벽화가 많은데요. 클라리온 앨리(Clarion Alley)와 발미 앨리(Balmy Alley) 가 미션스트리트 지역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벽화 거리입니다. 처음 벽화가 그려진 곳은 발미 앨리로 1980년대부터 그라피티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활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모두가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부터 종교와 사상, 민족주의 및 사회적, 정치적 외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벽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라피티의 화려한 색깔만큼이나 작품 안에 숨겨진 메시지는 다양하며 때로는 직설적이기도 합니다. 많은 그라피티 중에서도 예술성이나 상징성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더 우먼스 빌딩의(The Women's Building) 마에스트라피스(MaestraPeace) 벽화입니다. 건물의 외벽 전체를 덮고 있는 이 벽화는 1994년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여성 아티스트 7명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되었는데요. 여성의 치유력과 지혜, 세계 역사에 대한 공로 등 여성의 기여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졌다고 합니다.

 

 

역동적인 벽화로 가득 차 야외 아트 갤러리라고 해도 손색없는 미션 스트리트. 자유의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개성 넘치는 장소로 손꼽히는 만큼 직접 방문하셔서 이곳만의 자유로움과 벽화에 담겨있는 작가들의 메시지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무지갯빛으로 물든 거리 '카스트로 스트리트' 

 

샌프란시스코가 다양성의 도시라는 또 하나의 증거, 바로 카스트로 스트리트(Castro st.)입니다. 이곳은 바로 성 소수자들의 인권 운동이 시작된 곳이며 현재는 성소수자들의 거주지역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국제 동성연애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리 축제인 ‘핑크새터데이(Pink Saturday)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카스트로 스트리트는 어떻게 성 소수자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요. 항구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타국에 근무하던 미군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거점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군인 중에는 동성애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사회적 편견으로 억압에 시달리게 될 거란 생각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성 소수자들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고, 그렇게 카스트로 스트리트는 성 소수자들의 밀집 지역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동성애자들은 성 소수자 차별금지 운동에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고자 했는데요. 그 중심에는 동성애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 밀크(Harvey Milk)’가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뒤에도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며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 밀크는 동성애자의 권리 옹호를 위해 큰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성 소수자를 대표할만한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예술가 ‘길버트 베이커’에게 의뢰해 무지개 깃발을 만들기도 했고,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었던 조지 모스코니의 협조를 받아 동성애자 인권보장 조례를 통과시키는데 힘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샌프란시스코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요. 포대앰이 찾은 카스트로 스트리트에는 사랑과 평화, 존중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거리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역시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으로 꾸며져 있었는데요. 거리 곳곳에 아기자기하면서도 독특한 상점들이 밝고 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대표하는 공간인 만큼 많은 관광객이 카스트로 스트리트를 활보하고 있었는데요. 샌프란시스코의 치열한 역사가 빚어낸 존중의 가치가, 이곳에서 머무는 이들에게도 값진 배움을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포대앰과 함께 만난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즐겁게 보셨나요?

 

자유의 바람이 부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러분의 맘속에 숨겨져 있던 행복과 자유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Posted by 대학생브랜드앰배서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