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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브랜드 앰배서더 2017.09.29 09:59

[브랜드 앰배서더] 아프가니스탄 청년, 나심이 말하는 행복의 가치

 

 

“쾅! 다다다다쾅! 콰광!”
“나심! 어서 일어나 어서 뒷산으로 올라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굉음, 아버지의 고함. 새카만 밤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동생을 데리고 나는 허겁지겁 돌산으로 이끌려 올라갔다. 영문도 모른 채 시퍼렇게 얼어붙은 산에서 일주일 만에 집에 왔을 때, 키우던 염소와 양은 온데간데 없어져 있었고 집을 지키고 있겠다던 삼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탈레반은 우리 가족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나심의 에세이 中>

 

포대앰은 포프렌즈 활동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청춘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나심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포프렌즈 '자와드'의 가장 친한 친구로, 포스코청암재단 아시아한국유학 장학생이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자와드와 포대앰 사이의 통역을 도와주기 위해 포프렌즈 활동에 참여하게 된 나심은 유난히 밝은 모습이 인상적인 친구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인 나심은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는데요.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밝은 미소 속 숨어있던, 나심의 아픈 유년 시절

 

“9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때문에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됐어요. 우리 가족은 탈레반을 피해 몇 번이고 뒷산에 올라가 숨어있었는데, 아버지는 끝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야만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나심이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이란에는 나심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나심의 아버지는 이란에 있는 가족들의 전화번호나 주소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전쟁을 피하고자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이란으로 떠날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나심의 가족은 큰 승합차에 실려 브로커를 따라 국경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삼엄한 경비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어갈 기회를 엿보다가, 큰 화물차 수 십 대가 국경을 넘으려 할 때를 노려 겨우 국경을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도한 것도 잠시, 다른 사람들은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고 국경 지역 일대를 떠났어요. 하지만 우리 가족은 브로커에게 줄 돈이 없었고 이들에게 끌려가 어딘지 모를 허름한 건물 지하에 갇히게 됐죠. 브로커는 시간을 줄 테니 친척을 찾아 돈을 받아 오라고 했고, 어머니 혼자 친척을 찾으러 떠났어요.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당시 어렸던 저는, 어머니를 잃은 것 같아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죠. 그리고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까요? 다행히 어머니는 살아 돌아오셨어요. 하지만 친척은 찾지 못했어요.”

 

그렇게 또다시 기약 없는 감금이 이어지는 것 같았던 어느 날, 브로커들이 난민을 불법 감금하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면서 경찰들이 나심이 있던 지하실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나심의 가족은 경찰에게 잡히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된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도망쳤고 이후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채 정처 없이 길을 헤맸다고 합니다.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렸을 때쯤, 한 경찰차가 우리 가족 앞을 지나갔어요. 도망갔어야 했지만 더 도망칠 힘도 없었죠. 경찰에게 붙잡혀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경찰관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했죠.


우리는 경찰을 믿고 큰아버지의 이름을 말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에게서 큰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어요. 그 경찰관이 우리 가족에게 이야기하길, 거지 행색을 한 남자가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힘겹게 길을 걷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도움을 줬다고 했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저의 어린 시절은 지나갔어요.”

 

마음 속 풍요로움에서 찾는 행복의 의미

 

담담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표정으로 전쟁 중의 기억을 떠올리는 나심을 보니, 그가 얼마나 힘든 유년기를 보내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나심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는데요. 마침 나심이 입을 떼며 말했습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어요. 한국은 스스로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잖아요.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도전이나 성공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환경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오르지 못하는 사다리처럼, 제 앞에 현실의 벽은 무척 높았죠. 그래서 저는 한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어요.

 

어떻게 한국 유학을 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포스코청암재단의 아시아한국유학 장학 프로그램에 지원할 좋은 기회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장학금도 지원 받을 수 있었고, 학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또, 이렇게 한국어도 배운 덕분에 지금은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해외 영업을 맡고 있어요”


 

포스코청암재단과의 인연을 통해 한국 생활을 하게 된 나심은 현재 무척 행복하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한국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고 답했는데요. 남들보다 더 많이 웃고,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행복의미에 관해 고민하는 나심.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눈을 감고 행복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여섯 살 때의 기억이 떠올라요. 탈레반이 휩쓸기 전 아름다웠던 우리 마을, 노란 들꽃, 여유롭게 풀을 뜯던 염소들,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들판이요. 평화로운 안식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제가 느끼는 진정한 행복인 것 같아요.

 

예전에 한국 친구들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다’, ‘외제차를 타고 싶다’, ‘강남에 집을 사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모두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조금 낯설었어요. 저는 물질적인 소유가 우선이 되기보다 정신적인 비전이 있고 그에 따른 풍요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질적인 소유만 남게 된다면, 그들의 마음엔 공허함 밖에 남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한국에 와서 만난 친구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불행해 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걱정했죠. 그래서 저는 그들이 물질적인 풍요보다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렸으면 해요.


어린 나이에 생사를 넘나들던 저는, 늘 쫓겨 다니고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제 삶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제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를 갖게 된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었어요. 이를테면 아침에 아무 탈 없이 잘 일어나는 것, 심지어 제가 잘 잤다고 느꼈다는 것조차 말이에요.

 

저는 이제 한국이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의 가치를 찾을 때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내 삶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에 관한 깊은 성찰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어요. 내면의 목표를 세우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나심과 함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진정한 행복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는데요. 행복을 ‘감사’ 라고 정의 내린 그의 이야기처럼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다면, 고단한 하루하루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겠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청춘의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이야말로
풍요로운 행복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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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학생브랜드앰배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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