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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포스코 사람들 2017.03.03 07:00

[사람사람들] 3편.설비의 ‘지금’을 기록하는 남자! 광양제철소 예비처리공장 신양수 님

 

 

기쁘게 일하고 동료를 사랑하며 인생을 즐기는 포스코패밀리들! 그들의 희로애락 이야기를 담은 '사람사람들' 시리즈 3편이 돌아왔습니다! 세 번째 시간에서는 광양제철소 예비처리공장의 신양수 님을 만나볼 텐데요. 설비의 ‘지금’을 기록하는 남자 신양수 님의 이야기, 지금 바로 확인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광양제철소 예비처리공장에서 용강 크레인 운전을 담당하고 있는 신양수입니다. 저의 인생 좌우명은 ‘즐겁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인데요~ 일도, 가정도 모두 즐거운 게 최고 아니겠어요? 항상 긍정적인 눈으로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저는 아버지께 늘 ‘근면, 성실’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어요. 몸에 배고 익힌 습관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게 됐죠~ 제가 포스코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군대에 입대해 4년 6개월 복무를 마치고 입사했는데요.  

 

역시 회사에서도 그 습관이 어디 가지 않더라고요. 작업 중 또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부지런하게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선배들과 메모장에 기록된 내용들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개선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선활동을 하나둘씩 진행하면서 우수 제안으로 등록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요.

 

 

습관이 가져다준 좋은 결과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우수 제안으로 이어지려면 설비 지식과 전후 공정 흐름에 능통해야 하잖아요. 개선활동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레 크레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게 됐어요.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설비에 대해 설명해줄 때 저를 바라보는 또랑또랑한 그 눈빛을 보면 정말 가슴이 뛰어요. 20대 초반 멋모르던 젊은이였던 제가 어느덧 선배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전남 고흥에서 3남 3녀를 키운 부모님은 고생도 참 많이 하셨어요. 넉넉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저는 누구보다 ‘내 집’, ‘안정된 삶’에 대한 바람이 컸지요. 사회생활 초년기부터 월급을 아끼고 아껴 적금도 두세 개 들고 내집 장만의 꿈을 키웠어요. 그러던 2002년, 결혼 5년 차에 아파트를 마련했는데요. 더욱 기뻤던 건 고생해서 마련한 내 집에 입주한 다음날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제 생애 가장 큰 기쁨과 성취감을 안겨준 한 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30톤에 달하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3제강 용강 크레인 운전 작업을 16년간 했어요. 누군가는 고로에서 운반된 쇳물을 담아 전로에 장입하는 저장용기 ‘래들’을 들었다 내려놓는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30미터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전후좌우를 맞추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또 크레인 운전에는 앞뒤로 가는 주행, 좌우로 가는 횡행, 물건을 위아래로 조정하는 주권과 보권이 있거든요. 작업자들의 손은 두 개인데 한꺼번에 네 개의 운전을 해야 하는 거죠.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멘토에게 운전 노하우를 배우고, 작업 중 발생한 크레인의 결함 조치 방법도 하나씩 익히며 마침내 문제가 생겼을 때 재빠르게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숙련된 운전자가 됐어요. 2007년엔 광양제철소 예비처리공장으로 전입했는데요. 광양제철소의 크레인은 포항의 두 배 가량 규모가 큰 480톤이에요. 전로 1회 취련 후 완료된 쇳물의 양이 50차지로 작업량도 많이 늘었지만 포항에서 익힌 노하우 덕분에 업무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메모장과 볼펜. 제 회사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물건들입니다. ‘더 절약할 수는 없을까’, ‘더 안전하게 할 수 없을까’, ‘이렇게 개선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메모하느라 쉴 틈이 없죠. 이제는 설비부터 일상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개선 대상입니다.  

 

크레인 운전 중 잠시 시간이 날 때마다 개선활동을 메모장에 기록하고 기록된 내용을 문서탐색기의 설비 개선사항 폴더에 등록해 직원들과 공유해요. 이렇게 등록된 아이디어는 예비처리공장 내부 심의를 거쳐 개선활동으로 연계돼 원가 절감과 안전 향상에 기여합니다. 제가 메모장과 볼펜을 손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이유죠~

 

 

공장 맨 꼭대기에서 쇳물이 담긴 래들을 들고 쉼 없이 왔다 갔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동료들. 마치 곡예사같이 일하는 독수리 오형제 김대섭, 김남규, 장희정, 장영기, 박기환 님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크레인반 A조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할 뿐 아니라 항상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콩 반쪽도 나눠 먹는’ 사이죠. 2월 휴무일에는 김남규 님의 집에 초대받아 숯불구이 파티를 열기도 했는데요. 먹성 좋은 우리 A조 식구들의 소통 파티는 일할 맛 나는 직장을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랍니다.

 

 

사실 제가 2007년 광양제철소로 전입한 데는 사연이 있는데요. 2005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 홀로 고향인 전남 고흥에 계셨거든요.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아내는 고향이 포항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죠. 결국 수차례 상의 끝에 광양제철소로 옮기기로 하고 2년 뒤 전입을 했어요. 교대 휴일에는 어머니 농사일도 거들고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의 공기를 마시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돼요. 믿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하죠.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 있는데요. 바로 초등학교 시절 옆집에서 본 풍경입니다. 앞마당에 장롱, 수납장, 책장 등이 빼곡히 나와 있어 들어가 봤더니 커다란 안방에 사람들이 도배를 하고 있더라고요. 도배만 했을 뿐인데 새집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시골에서 도배를 하는 건 마치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과 같구나’하고 생각했어요. 1996년 도배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저는 ‘언젠가는 내 집도 스스로 도배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세웠는데요. 자격증만 갖고 있다고 전문 도배사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도배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웃도 돕고, 도배 실력도 쌓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데는 더욱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데요. 휴일에 아내와 함께 TV를 보는데 소외 계층에 집 수리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아내와 함께 도배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물장구 봉사단에 가입했어요. 물장구 봉사단은 도배뿐 아니라 소외 계층 및 장애인들을 위한 목욕 봉사, 수영 봉사도 하고 있는데요. 2007년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10년째가 됐네요. 

 

 

우리 아내는 직접 도배를 할 줄은 몰라도 벽지 풀칠 등 도배의 시작과 마무리 작업을 늘 함께 해주고 있어요. 유년 시절 느꼈던 것처럼 ‘도배로 새집이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면 정말 신기해요. 특히 바뀐 집을 보고 활짝 웃는 이웃들의 얼굴을 보는 게 큰 기쁨이죠. 집은 보금자리의 포근함을 선물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분들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드림으로써 재도약의 기회를 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물론 이런 좋은 일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고요. 

 

 


 


 

포스코패밀리의 희로애락 이야기를 담은 '사람사람들',

세 번째 시간 어떠셨나요? 

 

매사 긍정의 에너지로 설비의 '지금'을 기록하는 신양수 님께 응원을 보태며
다음 시간에는 4편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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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코 블로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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