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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이야기/스틸캐스트 2017.03.03 07:00

[스틸 인 테크] 1편. 스테인리스스틸, 최고의 손목시계를 완성하다!


이미지 출처 - 플리커


테크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 필진들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철을 들여다 볼 스틸캐스트의 신규 시리즈! '스틸 인 테크'가 첫 발을 뗍니다.

 

스틸 인 테크 시리즈를 통해 첫 번째로 조명해볼 주제는 고급 패션 아이템의 정점이자 금속 관련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손목시계'인데요. 철과 손목시계의 길고 특별한 관계의 대해, 박찬용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에게 들어봅니다. 그럼 지금부터 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실까요?



보통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다. 다른 재료로도 국수를 만들 수 있다. 쌀국수, 메밀국수, 옥수수 국수도 맛있다. 하지만 밀가루처럼 저렴하고 탄성이 훌륭하며 가공법에 따라 맛도 좋은 재료는 없다. 이탈리아, 한국, 일본, 중국, 나라를 불문하고 국수를 밀가루로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스테인리스스틸과 손목시계의 관계도 비슷하다. 보통 손목시계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다. 금, 티타늄, 세라믹, 카본 손목시계도 있다. 하지만 스테인리스스틸처럼 가격이 적당하고 강성이 훌륭하며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아름다워지기도 하는 재료는 없다. 애플, 롤렉스, 유명한 곳과 안 유명한 곳, 브랜드를 불문하고 스테인리스스틸로 손목시계를 만드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손목시계의 소재를 고르려면 뭘 염두에 둬야 할까?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사람의 몸에 닿는다는 것이다. 피부는 예민하다. 옻처럼 피부 체질에 따라 닿았을 때 독이 오르거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면 곤란하다. 굵은 울처럼 피부에 닿았을 때 거친 느낌이 닿아도 안 된다. 


다른 하나는 하필 손목에 감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데 사람의 손목 위는 기계에게 굉장히 가혹한 조건이다. 우리는 손으로 아주 많은 일을 한다. 씻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한다. 소재의 용어로 말하면 물에 닿아도 녹이 슬지 않는 내식성이 중요하다. 충격을 가했을 때 잘 견디는 내충격성도 필요하다. 손목시계는 평생 사람의 손목에서 풀렸다 감겼다를 반복한다. 온도 변화에도 잘 견뎌야 한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니까 오래 썼을 때 변색되어도 안 된다. 지금까지 말한 조건을 늘어놓았을 때 가장 적합한 소재는 역시 스테인리스스틸이다. 



밀가루에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등이 있다. 밀가루로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적합한 밀가루가 달라진다. 스테인리스스틸도 마찬가지다. 철과 철 아닌 것(비철)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스테인리스스틸의 등급이 생긴다. 철엔 원래 녹이 슨다. 녹을 안 슬게 하려면 이런저런 재료를 섞어야 한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스테인리스스틸의 등급(grade)이 나뉜다. 보통 미국의 산업 등급에 따라 200번대, 300번대, 900번대 등으로 분류된다. 


각자의 스테인리스스틸 등급엔 철과 재료의 비율이 정해져 있다. 300번대 스테인리스스틸 중 첫 번호인 301에는 스틸, 크롬, 니켈이 들어간다. 302는 좀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카본을 조금 더 섞는다. 가장 많이 쓰는 게 304다. 304L은 용접에 쓰기 위해 카본을 좀 덜 넣는다. 304LN은 장력을 높이기 위해 니트로겐(질소)을 섞는다. 마티니나 드라이 마티니 레시피의 차이와 같은 이야기다.


번호가 하나씩 높아지다 보면 316이 나온다. 30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쓰는 스테인리스스틸이자 손목시계에 가장 많이 쓰는 소재다. 316의 가장 큰 특징은 녹에 강한 내식성이다. 녹을 막기 위해 316에는 *몰리브덴을 조금 섞는다. 316L은 316에 비해 카본을 조금 덜 넣는다. 둘은 모두 혹독한 온도에서 잘 견디고 녹도 잘 슬지 않는다. 의료기기에 쓸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에서도 안전하다. 손목시계를 만들기도 좋은 소재다. 


원래 모든 분야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손목시계의 세계는 여러분의 상상 이상으로 넓다. 스테인리스스틸도 여러 가지 종류가 여러 방식으로 쓰인다. 손목 위에 올라간 동전만한 기계에도 사람은 여러 가지 변주를 줄 수 있다. 


*몰리브덴: 스테인리스스틸에 첨가해 내식성을 향상시키는데 쓰이는데 주로 쓰이는 은백색의 금속 물질. 원자번호 42.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오이스터 퍼페츄얼 에어킹


고급 손목시계 중 가장 유명한 롤렉스는 스테인리스스틸도 남다른 걸 고집한다. 롤렉스는 다들 쓰는 316이 아니라 904L을 쓴다. 니켈과 크롬, 몰리브덴과 동이 더 들어가 있고 만들기도 더 어렵다. 대신 더 단단하고 녹에도 더 강하며 결정적으로 더 반짝거린다. 기능성뿐 아니라 장식성도 훌륭해야 하는 현대의 손목시계에 잘 어울리는 특징이다. 


비싼 물건을 만들려면 까탈스럽게 굴어야 한다. 롤렉스도 904L에게 까다롭게 군다. 904L은 다른 스테인리스스틸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에 롤렉스는 904L로 시계를 제작할 수 있는 기계부터 새로 만들어야 했다. 스틸을 그냥 받아쓰는 것도 아니다. 롤렉스의 스틸 납품 업체로 선정되어도 롤렉스는 소재를 받은 후 자체적으로 한번 더 검수한다.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돌려보낸다. 기준에 만족하는 소재는 자체적으로 한번 더 녹였다 굳힌다. 불순물을 빼내기 위해서다. 


소재가 다르니까 롤렉스 손목시계는 다른 느낌이 난다. 같은 스테인리스스틸이라도 롤렉스의 904L은 조금 더 반짝이고 따뜻해 보이며 낡아갈 때도 더 우아한 빛을 띤다. 롤렉스는 1985년부터 시계 케이스에만 904L을 쓰다 2006년부터는 브레이슬릿에도 904L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의 롤렉스가 당신 아버지의 롤렉스와 다른 광택을 낸다면 그게 316L과 904L의 차이다.


모든 빛나는 물건엔 그림자가 있다. 904L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산화알루미늄을 강조하듯 롤렉스는 904L을 강조하지만 말하지 않는 사실도 있다. 알레르기다. 904L은 316L에 비해 니켈, 크롬, 몰리브덴, 동이 더 들어간다고 했다. 니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현행 롤렉스를 차면 두드러기가 올라올 수 있다. 니켈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롤렉스를 차고 싶다면 빈티지를 사거나 줄을 바꾸면 된다. 니켈 전지를 손목에 대고 좀 기다리면 자신이 니켈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904L과 316L 중 무엇이 더 좋은 소재인지는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토론 거리다. 알레르기 등의 이유를 생각했을 때 굳이 904L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어차피 316L이나 904L모두 의료 기기에 쓰일 정도로 안전함을 인정받은 소재다. 904L이 316L에 더 만들기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애호가의 논쟁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원래 애호란 피곤하고 까다로운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오데마 피게 공식 홈페이지, 로얄 오크 크로노그래프



316L을 쓰면서 롤렉스보다 비싼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데마 피게다. 오데마 피게를 대표하는 손목시계 로열 오크는 스테인리스스틸 316L로 만든다. 로열 오크는 손목시계 역사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오데마 피게의 슬로건은 “규칙을 부수려면 먼저 그 규칙을 통달해야 한다”다. 이들은 로얄 오크를 통해 규칙을 부쉈다. 스테인리스스틸을 골랐다는 게 오데마 피게가 깬 규칙이었다.


첫 로얄 오크가 나온 1972년 즈음엔 고급 시계의 재료는 다 금이었다. 스테인리스스틸은 고급 시계가 아니라 다이버 시계나 파일럿 시계처럼 튼튼한 기계에 쓰는 소재였다. 달에 가던 우주 비행사들의 보조 시간 측정 기구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였던 시대다. 오데마 피게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고가 시계를 내놓으며 이 규칙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규칙을 부술만큼 정통하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로얄 오크는 표면처리 기술, 디자인, 브랜드에 자신 있는 시계 명가의 도전이었다. 시계에 쓰는 금속의 표면 장식법은 크게 두 종류다. 은은한 빛을 내는 브러싱과 번쩍이는 반사광을 내는 폴리싱이다. 오데마 피게는 팔각형 시계 로얄 오크의 여덟 각마다 브러싱과 폴리싱을 번갈아 입혔다. 한 방향으로 붓질을 가한 듯한 브러싱 처리야말로 로얄 오크의 백미다. 1972년의 첫 로얄 오크는 롤렉스 서브마리너보다 10배쯤 비쌌다. 로얄 오크는 보란 듯 성공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초고가 시계 브랜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인리스스틸 시계를 만든다.


요즘 시계 업계를 가장 긴장시키는 회사는 애플이다. 애플 워치는 어떤 소재를 쓸까? 싱겁게도 스테인리스스틸 316L을 쓴다. 스포츠에는 알루미늄을 쓰지만 조금 저렴한 애플 워치엔 역시 스테인리스스틸이다. 검증된 소재는 중요하다. 


이미지 출처 - 진 공식 홈페이지, 다이버 시계 EZM3



진짜 특수한 소재를 쓰는 회사도 있다. 독일의 진sinn은 충격에 강한 시계를 만드는 데 특화된 회사다. 이들은 물속에서 쓰는 다이버 시계를 만들 때 잠수함용 스테인리스스틸을 쓴다. U-보트 스틸이라고도 부르는 이 철강은 소금물과 압력에 특히 강하다. 진짜 물속에 기계식 시계를 차고 들어가려면 장식용 다이버 시계가 아니라 이런 시계를 찾아봐야 한다.


100여 년 정도에 불과한 손목시계의 역사 안에는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시계 기술이 스위스의 산맥으로 들어가 융성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손목에 시계를 감는다는 개념이 퍼지고 일본이 쿼츠 무브먼트를 만들어 시장을 다시 짜고 스위스 시계는 전략을 바꿔 일종의 귀금속이 되어 살아남는가 했더니 미국의 IT 기업가들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퍼뜨리려 사람들의 손목을 노린다. 


그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스테인리스스틸이라는 소재다. 첫 손목시계부터 지금의 스마트워치에 이르기까지, 세 세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계속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시계를 찬다.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되든 사람들이 밀가루를 길게 뽑아 가공한 국수를 먹어 왔듯이.


* 스틸 인 테크는 해당 분야 전문가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포스코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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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코 블로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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