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기업 블로그
나눔/메세나 2016.10.31 07:00

움직이는 옛 그림이 완성한 5분의 미학,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새와 나비가 살랑살랑 자유로이 날갯짓하고, 만개한 매화는 바람결에 꽃잎을  흩날리며 은은한 향기를 퍼트리는 풍경. 10여 년 전, 이이남 작가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디지털 8폭 병풍에서 만난 풍경입니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는데요.

  

△ <8폭 병풍>, 2007. LED TV, 병풍 프레임, 5분


병풍이라고 하면 으레 고풍스러운 산수화나 화려한 화조화, 기품 넘치는 문자도 등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익숙한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 그만의 디지털 병풍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누구나 알 만한 명화작품에 디지털 기술로 움직임을 가미해 생명을 불어넣는 그의 작품 세계로 Hello, 포스코 블로그와 지금부터 함께 가보실까요?

 


작가 이이남은 1969년 전남 담양에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이남(二男)’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로 성장했지만, 그의 작품에  묻어나는 따뜻한 정서와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마 어린 시절 드넓은 들판과 푸른 산천을 뛰놀았던 유년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 지금도 고향 담양은 작가에게 있어 내면의 쉼터이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하는데요.

 

작은 시골마을 꿈 많던 소년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며 미술가로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순수미술로 시작했지만 그는 1990년대 말 학생들을 가르치며 알게 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기로 영상작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 촬영 대상의 움직임을 연속으로 촬영하는 것과 달리 한 프레임씩 변화를 주면서 움직임을 촬영한 후, 이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영사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기법 (출처: 만화애니메이션사전, 2008,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그의 영상작업은 17인치짜리 작은 모니터,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부족한 경험과 지식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정신과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식견이 있었기에, 지금의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죠.

 

△ 작업실의 이이남 작가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 풍경은 여느 도서관과 다르지 않습니다. 벽면 가득 채워져 있는 온갖 종류의 이미지들과 장르를 불문한 수많은 책... 언뜻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멋과 낭만이 있는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려는 듯한 의욕 넘치는 탐구정신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메모벽’인데요. 그는 거리를 걷든 사람을 만나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스케치한다고 해요. 이렇게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끊임없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는 그의 습관들이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작품들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죠.

 

△ <미인도와 벨라스케스 그리고 개미 이야기>, 2011. LED TV, 4분 50초


이이남 작가의 작품 스타일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명화를 차용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정선의 ‘금강전도’ 등에 영상 장치와 음향을 더해 5분 남짓한 작품을 완성하는데요.

 

흔히들 예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림이나 조각 등 새로운 이미지를 창작해내는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왜 누구나 다 아는, 전혀 새롭지 않은 명화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예술작품 앞에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 않습니다. 무심하게 스치는 관객들의 발길 몇 걸음과 짧디 짧은 시선 몇 분을 경험한 그는 최소 5분 만이라도 자신의 작품 앞에  그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할 묘책을 고민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명화를 작품 소재로 사용한 것이죠.

 

하지만 그에게 명화는 단순히 재료일 뿐입니다. 원본이 갖고 있는 의미에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가미해 원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이남 영상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5분의 미학’이 완성됐습니다. 알고 있는 그림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전개에 호기심을 느낀 관람객은 쉽사리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기꺼이 5분의 시간을 내어줍니다.

 

그의 작품 ‘미인도와 벨라스케스 그리고 개미 이야기’를 보면 17세기 궁중화,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1659),’ 18세기 조선화가 신윤복의 ‘미인도’가 함께 등장합니다. 화면을 분주하게 오고 가는 개미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두 여인의 옷차림이 서서히 뒤바뀌는데요. 문명이 다른 시공간에서 그려진  두 작품의 만남 자체가 ‘새로움’이죠.

 


뜨겁던 여름을 보내고 찾아든 선선한 바람과 단풍의 계절, 포스코미술관은 이이남의 개인전 <포세이드리의 눈빛>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0월 12일부터 11월 1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포스코미술관 20년 전시 역사 중 최초의 미디어 아트 전시이자,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가 근 2년 만에 국내에서 선보이는 신작 위주의 개인전인데요.

 

전시 제목 ‘포세이드리(PoseideLEE)’는 ‘포세이돈’과 ‘이이남’을 합성한 신조어로, 신과 인간의 소통으로 ‘진리에 접근하려는 자’를 뜻합니다. 그동안 선보인 작품에서도 드러나듯 이이남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 예술과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 영역까지 모두 아우르는 브릿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융합적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소통의 장(場)을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습니다.

 

△ <포세이드리의 눈빛>, 2016. 자개가구, LED TV, 10분, 165X675X200cm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국 장인의 숨결을 내포한, 자연의 빛과 색을 대표하는 ‘자개’를 새로운 재료로 사용했는데요. 천연 자개가 발산하는 ‘자연의 빛‘과 첨단 기술이 만들어 낸 ‘인공의 빛’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지평 위에서 만나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한때 집안 안방에 크게 한자리를 차지하며 부의 상징으로 애정 받았지만 이제는 퇴물로 취급 받으며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자개장롱이 디지털 자개병풍 작품으로 재탄생해 전시장에 선 것이죠.

 

버려진 자개장롱 중 문짝만을 재활용해 조립된 병풍은 문짝 표면을 대나무 모양으로 레이저 커팅하고 내부 안쪽에 LED TV를 장착했는데요. 자개 표면을 일렁이는 무지갯빛과 모니터를 뚫고 나온 밤하늘 오로라 같은 환상적인 빛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압도적인 분위기의 빛을 분출합니다. 작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삶 속에서 ‘빛’을 통해 시간의 자취를 느끼게  하고, 현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좌) <다비드 건담>, 2016.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자개, 36X45X160cm.

(우) <태초의 빛-비너스>, 2016. FRP, 자개, 75X80X220cm.


자개를 이용한 또 다른 시도는 바로 조각 작품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밀로의 비너스와 건담 로봇이 작가의 손을 거쳐 ‘자개’라는 새로운 빛을 장착했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아니 누구도 생각하지 않던 자개를 사용해 만들어낸 조각은 또 한 번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평면 모니터 안에서 구현되던 그의 작품은 이제 모니터 밖으로 확장되어 다채롭게 존재함으로써 이이남 예술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죠.

  

△ (좌) <생명으로부터>, 2016. LED TV, 8분, 70X1000X5cm.

(우) <다시 태어나는 빛-자개>, 2016. LED TV, 7분 40초, 130X77X13cm.


이 외에 LED TV를 주로 사용한 새로운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금’과 ‘나비’의 만남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생명으로부터’는 금의 녹슬지 않은 순수함과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 가치를 작품에 투영했는데요. ‘다시 태어나는 빛-자개’는 조선시대 계회도 한 점을 시작으로 시간과 계절의 흐름은 물론, 우주적인 테마와 현대적 메시지까지 녹여냈습니다. 상상 가능할 법한 영역에서 시간과 공간에 움직임을 부여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제 그의 영상작업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뛰어넘은 듯 보입니다.

 

△ <혼혈하는 지구-증강현실>, 2016. 가변크기,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 작품


이이남 작가는 올해 부산 비엔날레(9월 3일~11월 30일)에서 최초로 구글의 가상현실(VR) ‘틸트브러쉬(tilt brush)’ 기술을 접목시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틸트브러쉬는 HMD(Head Mounted Display·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기기)와 콘트롤러를 이용해 가상공간에 3차원 입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VR 애플리케이션인데요.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한 미디어 아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현재 11월 벨기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오늘날,

이이남 작가의 작품은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주는 듯 합니다.

 

이번 주말, 잠시 포스코센터에 발걸음 하셔서

미디어 아트를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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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코 블로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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