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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이야기/스틸 피플 2016.01.06 07:00

범종 제작 장인 원광식 주철장 - 천 년의 소리를 찾아온 여정

 

 

 

 

 

충청북도 진천 땅에 가면 우리나라 최대의 종 제작사인 성종사가 있다. 약 2만㎡(6,000평)에 펼쳐진 약 1,750㎡(530평) 규모의 성종사에서는 최대 1만 5,000관(56.25톤) 규모의 종을 만들 수 있단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다. 이 성종사를 이끌면서 53년째 종 하나만을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으니 바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인 원광식 선생(73)이다.

 

선생은 열일곱 살 때부터 쇠를 다루는 일을 하다가 군역을 마친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종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주물 일을 하던 8촌 형(故 원국진)이 종 제조사인 성종사를 차리자 일을 도와주게 되었던 것. 그러던 중 어느 날 작업장에서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게 되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결혼한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선생은 실의에 빠져 범종을 만드는 일을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려고 했으나 눈만 감으면 맑고 은은한 종소리가 마음을 잡아끌었다고 한다. 종을 만드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선생은 종을 만들다가 죽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종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197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수덕사에 들어가 4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하다시피 하며 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는 8촌 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준 성종사를 맡으면서 종을 만드는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매진하게 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좀 나아지자, 전국의 사찰에서 범종을 복원하거나 제작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 일을 맡게 되면서 범종을 만드는 일에 어떤 막중한 책무를 느끼게 되었죠.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갖고 있던 통일신라 시대 범종을 제대로 복원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범종을 복원하고 싶다는 열망 하에 본격적인 범종 연구를 시작한 원광식 선생은 범종 관련 문헌이나 자료를 하나하나 찾기 시작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일본과 중국까지도 가서 정보를 구했다. 그리고 체계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복원 작업을 위해 학계에 있는 전문가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작인 황수영 박사와 고 임영하 서울대 기계공학 박사 등과 힘을 합해 한국범종학회를 설립한 것도 전통적인 범종의 제작기법을 되살리기 위한 선생의 집념의 결과다.

 

"좋은 종을 만드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섰어요. 학자, 기술자, 스님 등과 한국범종학회를 설립하고 종의 구성 성분, 종소리의 원리, 소리 분석 등을 연구하고, 학술지를 내기도 했죠.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전통적 주조법인 ‘밀랍주조기법’을 재현해냈습니다. 이 기법으로 신라 상원사종, 선림원종 등을 복원했지요."

 

선생이 재현해낸 밀랍주조기법은 밀랍으로 범종의 모형을 정교하게 만든 뒤 이를 고령토와 점토를 혼합한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싸고, 안의 밀랍을 녹여낸 자리에 1200도의 쇳물(동과 주석 합금)을 부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원광식 선생은 기술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얻었고, 200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를 비롯해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범어사, 법주사 등 전국의 대표적인 사찰에 있는 대부분의 범종이 바로 원광식 선생의 손에서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타종하는 서울 보신각의 종도 원광식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생이 만들어낸 종만 자그마치 7,000여구. 선생의 명성이 나라 밖으로까지 널리 알려지자 중국과 베트남, 일본,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범종 제작 의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 2월에는 30톤이 넘는 대만 최대의 범종을 제작해 현지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여러 나라에 종을 만들어서 수출했어요.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모든 지원을 다 해줄 테니 자기 나라에 들어와서 공장을 짓고 종을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나는 절대로 장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를 돈과 바꾸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든 종은 우리나라에서 만들겠다는 원칙을 세웠죠."

 

 

 

선생은 당신이 어렵게 복원해낸 한국범종의 보존과 관리, 그리고 전통제조기법의 지속적인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는 종 박물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충북 진천군과의 협의를 통해 지난 2005년 종 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이 박물관에 평생 수집한 범종 150구를 기증하기도 했다.

 

"인간은 기껏 백 년을 살지만 종은 천 년 이상을 가죠. 지금 내가 만드는 종이 천 년 이상 갈 거라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남들은 내게 명장이라고 하고 인간문화재라고 하는데, 아직 내 최고의 종은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지금 균열의 위험 때문에 타종을 못하고 있는데 꼭 똑같이 복원해서 종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천 년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선생의 말 속에는 이미 천 년을 내다보는 깊은 긍지가 깊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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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코 블로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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