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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이야기/스틸 피플 2015.09.02 07:00

포스코미술관 철이철철 전시작가를 만나다 4편. 김경환 작가 - 철이 가죽이 되는 시간

 

 

 

따뜻하고 푹신해 보이던 질감의 가죽 의자는 만지는 순간 차갑고 단단한 물성을 지닌 철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시각과 촉각의 충돌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가죽과 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동시에 깨지는 순간이다.

 

“어느 전시회에서였어요. 한 여자분이 들어오셔서는 제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셨지요. 전시물이 아니라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놓아둔 소파라고 착각을 하신 거죠. 아직까지도 그분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2001년 ‘소리-촉감’전을 기획한 뒤로 그의 관심은 관람에서 그치지 않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두 번의 감상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작품에 가 있었다. 그러니 몸 전체로 작품을 느껴보았을 여자 관람객에 관한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면 그는 늘 신이 난다.

 

△ <의자의 진화>

철을 수만 번 두드려 가죽(의자)과 나무(다리)처럼 보이도록 만든 작품.

 

‘소리-촉감’전은 시각 중심적인 전시에서 벗어나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물론 대상을 넓혀보고자 하는 의욕으로 시작되었다. 작품 감상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시각, 청각 장애자들에게 감상의 기회가 주어질 터였다. 서울농학교의 학생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단순한 행사 차원에서의 관심이라고 생각한 학교 측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수차례 학교를 찾아간 뒤에는 진심이 통했다. 그들에게 문화적인 혜택을 나눠주기 위해 한 일이었지만 정작 그 전시회를 통해 큰 혜택을 받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199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 부분에서 대상을 차지한 뒤로 그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다 이룬 듯한 착각에 빠졌다. 거칠 것이 없었다.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이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부끄러워했다. 자신에게로 쏟아진 기대와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작업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 했다. 쓰다 버린 철이 작업장 곳곳에 쌓여 있었다. 평소라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는 작품 대부분을 동과 동합금을 이용했다. 비싸야 값어치가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철을 집어 들었다. 손안에서 잘 굽히지 않는 철의 물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철을 보면서 그는 오래전 철로 작업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반드시 철을 통해서여야 했다. 그때부터 철을 이용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철의 물성부터 다시 공부했다.

 

 

그 짧은 말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는 1밀리미터 두께의 철판을 사용한다. 빨갛게 달궈진 철이 식으면 그때부터 망치질이 시작된다. 벌겋게 단 상태에서 망치질을 하는 것을 ‘열간 가공’이라고 부르는데 힘이 많이 들지 않는 대신 표면 상태가 고르지 않고 제품의 정밀도가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냉간 가공’으로 작업을 하는데 식어버린 철은 단단해져서 형태가 잘 잡히지 않는다. 힘은 물론이고 시간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한때는 힘으로 이기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내려치기를 수만 번, 어느 순간 망치 끝에 와 닿는 철의 느낌이 바뀐 듯한 착각에 빠진다. 소리가 달라진다. 지금껏 자신이 내려치고 있던 것이 철이 아닌 가죽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망치질이 아니라 이제는 무두질이다. 철은 가죽의 푹신한 질감을 가지고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철은 자신의 고유한 물성을 좀처럼 버리려 하지 않는다.

 

 

 

맨 처음은 옹기였다. 이천의 도자기 작업장에 가서 옹기만 관찰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흙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는 아크 용접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다. 스파크가 튀면서 순식간에 3000도까지 열이 오르는데, 그의 얼굴은 그때 튄 불똥으로 얼키설키 패어 있다.

 

옹기가 도자기 느낌을 가진 항아리가 되는데 착색이 큰 역할을 했다. 철 표면을 사포질한 뒤에 사나흘 동안 화학 용액을 묻혀 가면서 착색했다.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착색의 역할이다. 같은 형태라 해도 착색에 의해 전혀 다른 감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옹기는 도자기가 되고 목재가 되고 가죽이 되었다.

 

특수 제작한 정으로 철판의 표면을 내리치는 작업은 가장 지난한 과정이다. 한 땀 한 땀 실로 누비듯 정질을 해나간다. <함지박>은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음식이 담겨 있듯 우부룩하게 덮힌 조각보가 인상적인데, 백여 장이 넘는 조각보들을 잇고 있는 것은 무수한 땀들이다. 5만 번이 넘는 정질을 했다. 일본의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본 일본인 작가가 한국에는 이런 효과를 내는 기계가 있느냐고 물어보았을 정도이다.

 

 

작업 중에 그는 귀마개를 하지 않는다. 쨍쨍거리는 망치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내려치면서 단금하고 있는 것은 눈앞의 철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전시된 <의자의 진화>는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의자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 학생들은 한결같이 네 개 혹은 세 개인 의자 다리 개수부터 시작했다.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했다. 안정성과 균형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리 개수부터 변화시켜야 했다. 버려진 각목을 기대놓은 듯한 의자 다리 s는 그렇게 나왔다. 얼핏 그의 작품 <못걸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에 의하면 진화란 우리 감각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다.

 

 

△ <함지박>(왼쪽)

농촌 들녘에서 어머니들이 음식을 나르던 함지박.

그 위에 조각보를 덮어 무엇이 담겨있을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못걸이> (오른쪽)

철 재료를 통해 나무질감(옷걸이)과 섬유질감(가방)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파와 의자, 형태가 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동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누가 잠깐 앉았다 간 소파 같은 거예요. 10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가 앉았던 자리와 어린아이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은 다를 테니까요. 그 찰나를 포착해보고 싶습니다.”

 

김경환 작가에게 철은 아직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진 소재이다. 철로 철이 아닌 모든 것을 표현해보고 싶어 하는 작가, 그의 철은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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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코 블로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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